웰컴드링크였던 로저구라트 로제 까바의 색이 분위기를 열었고, 루프탑의 공기는 화이트 와인의 산도와 질감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습니다. 노을이 내려앉은 뒤에는 레드 와인의 향과 숙성미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준비했던 라인업 대부분이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고, 다들 충분히 와인을 즐긴 덕분에 마지막 Calon Ségur 1993은 결국 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마신 와인"보다 "함께 놓였던 장면"이 더 오래 남는 밤이 되었습니다.
행사의 밀도는 와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기온, 해가 내려가는 속도, 테이블 위 음식과 잔에 얹히는 빛, 그리고 루프탑에서만 느껴지는 열린 공기가 함께 작동했습니다. 이날의 날씨는 와인의 온도와도 잘 맞았고, 화이트에서 레드로 넘어가는 흐름도 훨씬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시작을 열기에는 너무나 적절했습니다. 색은 예쁘고 설레는 톤이었고, 숙성감 때문인지 질감이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웠습니다. 루프탑에 올라온 사람들의 긴장을 풀고 첫 잔의 기대감을 만드는 역할을 정확히 해냈습니다.
호스트 입장에서는 이 와인이 ‘봄의 루프탑’이라는 기획을 떠올리게 만든 출발점이었습니다. 흔히 기대하는 화이트의 직선적인 상큼함과는 다른, 조금은 독특하고 섬세한 인상이 있었고, 와이너리와 품종의 의미도 크게 와닿았습니다.
처음에는 오픈 직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금씩 따라 환원취를 느껴보았습니다. 이후 얼음에 담은 카라프에 스플래쉬 디캔팅을 하며 환원취를 날리고 온도도 더 정교하게 맞췄더니, 아예 다른 와인처럼 변했습니다. 요거트 같은 인상, 직관적인 맛있음, 부드러운 질감이 살아났고 반응도 매우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현장 반응은 샤블리가 더 좋았습니다. 2009 빈티지가 너무 올드하게 꺾이지도, 너무 영빈티지처럼 산도가 튀지도 않는 지점에 있었습니다. 익은 풍미와 생동감이 동시에 살아 있어 양쪽의 장점을 모두 가진 상태였고, 다들 매우 맛있게 받아들였습니다.
피노 누아와 바르베라의 비교에서는 바르베라 쪽 반응이 더 컸습니다. 첸텔리노로 서빙한 바르베라는 색은 진하고 보라빛인데, 맛은 여리면서도 질감과 에너지가 또렷했습니다. 단순한 데일리 바르베라가 아니라, 체사레 부쏠로 특유의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이 있었습니다.
까날리끼오 디 소프라 RDM은 RDM 입장에서 매우 훌륭했습니다. 다른 RDM보다 BDM에 가까운 밀도감이 있었고, 향도 좋았으며 봄날의 루프탑 무드에도 잘 맞았습니다.
현장 반응은 1995 안티노리가 더 좋았습니다. 3차 숙성이 아름답게 펼쳐졌고, 향은 깊은데 맛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타닌과 산도가 잘 붙잡혀 있으면서도 부드러웠고, 3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생기가 있었습니다. 세디먼트 없이 호스트가 디캔팅을 잘 마친 점도 그날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Calon Ségur 1993은 준비되어 있었지만 열지 않았습니다. 이미 모두가 충분히 마셨고, 이날의 흐름은 더 밀어붙이기보다 좋은 지점에서 멈추는 편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이 병은 실패한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다음을 위해 남겨진 조용한 마침표로 기록합니다.
이날의 봄은 병 안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장소와 시간대와 날씨, 그리고 잔을 든 사람들이 함께 만든 루프탑의 계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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